나이로비 호스텔 여자 직원의 충고

호스텔은 세인트 헬렌 컨테이너스 니야시 라는 긴 이름의 길에 있었다. 카렌 과 갤러리아 사이만 왔다 갔다 하는 란카나 라는 이름의 마타투 미니버스 가 있었다. 호스텔 여자직원이 한번 타는데 20 쉴링 이 라고 가르쳐 주었다. 카렌 과 갤러리아 에 여러 번 갔다. 수퍼마켓 도 있고 돈 바꾸는 데 도 있고 음식 도 살수가 있었다.

버스를 탈 때 마다 여직원이 가르쳐 준 대로 20쉴링씩만 주었다. 어떤 조수는 10쉴링 을 더 달라고 하였다. 돈을 더 주기를 거절 하였다. 이 말을 여직원 에게 하였더니 돈 을 더 줄 필요가 없다고 재차 말하였다. 계속해서 싸워 가면서 까지도 20쉴링 만 주었다. 그래도 불상사는 없었다.

마사이 마라 사파리 갈 때 이 일이 생각나서 운전수 인 앙리 옥쿡 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고 놀랬다. 하루 중의 시간대에 따라서 요금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덧붙이기를 내가 만약 젊은 사람 이었으면 나를 차에서 끌어 내렸을 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 다음에는 이 버스를 타면 무조건 30쉴링씩 주었다.

버스는 손을 들면 아무데서나 손님을 태웠고 늘 만원이었다. 갤러리아 에 가서 술 과 먹을 것을 사가지고 버스를 탔다. 비닐봉지 하나가 거의 찰 정도였다. 봉지를 발 밑에 내려 놓았는데 이리 저리 움직였다.

옆에는 검은 늙은 할머니 가 타고 있었다. 할머니가 내 비닐 봉지를 집어 올리더니 자기 무릎 위 에 올려 놓았다. 봉지에서 먹을 것을 꺼내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할머니가 봉지의 끈을 꼭꼭 묶는다. 물건이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봉지를 나의 무릎 위에 올려 놓는다. 봉지를 내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꼭꼭 누른다. 다시는 내려놓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를 쳐다 보고는 씩 웃는다.

카렌에 갔을 때다. 슈퍼마켓 에 가서 맥주 한 병 과 먹을 것을 샀다. 파킹 장 주변에 있는 상점의 계단에 가서 앉았다. 셔터 가 내려져 있었고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그늘이 좋았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술도 마셨다. 젊은 애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동양 할아버지가 신기했던지 계속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내가 먹고 있는 맥주병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일어났다. 이것을 보았는지 중년 남자가 와서 애들을 쫓아버리고 식사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 주었다.

묵는 호스텔은 카렌 이라고 하는 부촌에 있었다. 나이로비 시내로 나가려면 차를 두 번 타야 했다. 란카나 미니버스를 타고 갤러리아 까지 갔다가 길을 건너서 마타투 라고 하는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 했다. 나이로비의 시내버스는 나이로비 기차역에 모인다. 시내의 중심이고 버스 종점이기 때문이었다.

호스텔에는 손님이 별로 없었다. 시내에서 멀리 있어서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공기가 시내보다 훨씬 맑았다. 호스텔에는 큰 정원이 있었고 커다란 나무들도 심어져 있었다. 큰 나무 두 그루 사이로 해 먹이 매어져 있어서 앉아서 놀기도 하고 낮잠도 잘 수 있었다.

호스텔 여주인은 상당한 인텔리였다. 케냐 정부기관 에서 근무 하였다고 하였다. 호스텔은 자기 것이 아니고 세 내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상재가 있는 여자였다. 정부에 일할 때 공무로 한국에 가본적이 있다고 하였다.

놀란 것은 한국이 옛날에는 케냐보다 더 가난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의 오른팔을 공중으로 치켜 올리면서 붕 하고 소리를 냈다. 그렇게 한국의 경제가 떠 버렸다는 것이었다.

호스텔에는 스꾸비 라는 이름의 개가 있었다. 수놈인데 환관 수술을 받았다. 상당히 큰 개였다. 오라고 해도 오지도 않고 슬슬 피하였다. 친해지려고 계속 노력 하였다. 개하고 친해지는 방법은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최고다.

밥 먹을 때 주인 몰래 고기를 조금씩 주었다. 친해졌다. 밥 먹으러 가서 테이블에 앉으면 스꾸비가 어느 틈에 나타났다. 자기의 턱을 나의 무릎 위에 올려 놓았다. 마사이 마라 야생동물 국립공원에 갔다가 삼 일만에 돌아 왔는데도 잊지 않고 반가워 하였다. 꼬리를 흔들고 펄쩍 펄쩍 뛰었다.

방에는 침대가 여섯 개가 있었다. 이스라엘 청년 둘이 하루 밤을 자고 떠났다. 케냐산으로 간다고 했다. 케냐에는 세계 등산 인들이 즐겨 찾는 높은 명산들이 많이 있었다. 케냐산의 높이는 5000미터로 2800미터의 백두산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하루는 불란서 청년이 들어왔다. 걱정이 태산이다. 케냐공항에서 입국수속을 밟는데 이민국 직원이 입국을 거절 하였다고 하였다. 여권의 만료 기한이 6개월이 채 안된 다는 것 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여권의 유효기간은 최소한 6개월 이상 남아 있어야 한다.

이 청년은 불란서 여권유효기간은 10년 인데 여권을 작년에 발급 받았다고 하였다. 자기는 케냐에 올 때까지 여권의 만기일에 신경도 쓰지 안았고 쳐다 보지도 안았다고 하였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 까.

청년은 8년전에 여권을 만들었다. 배낭여행을 하도 많이 다녀서 입국도장을 찍을 공간이 여권에 남아있지 안았다. 자기나라 외무부에 가서 말 했더니 새 여권을 발급해 주었다고 하였다. 문제는 새 여권의 만기일이 구 여권의 만기일과 같았던 것이었다.

청년은 불란서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고치는 조건으로 입국을 허가 받았다고 했다. 저녁에 만났는데 풀이 죽어 있었다. 대사관이 만기일을 고쳐 주거나 연기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