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구세주 그리스도상 만나

2011년 72세의 나이로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한 달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를 혼자서 배낭여행 하였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는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 강 이었다.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에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 도착 하였다. 브라질은 쏘련 캐나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다. 리우데자네이루는 인구 700만으로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예약한 호스텔은 이파네마 해변에 있었다. 공항에서 직행버스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갔는데 쉽게 호스텔을 찾았다. 방에는 침대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6개가 있었다. 18명이 잘 수 있는 방이다. 이런 방이 여러 개 있었다.

같은 방에서 에콰도르 에서 온 18세된 소년을 만났다. 데이빗 이라고 하였다. 내 침대는 일층이었고 소년의 것은 내 위의 삼층이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소년과 같이 버스를 타고 구세주 그리스도 상을 보러 갔다. 버스는 산 밑 까지만 가고 거기서 전용 미니버스를 타고 그리스도 상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나도 예수처럼 팔을 쩍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소년이 사진을 찍어서 후일 이 메일로 보내 주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세계삼대 미항 중의 하나로 손색이 없었다. 아래에 아름다운 로드리고 데 프레이타스호수가 보였다.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걷기가 좋다.

호수를 걸었더니 조정학교가 나왔다. 카누처럼 생긴 배를 사람이 뒤를 보고 앉아서 노 두 개를 젓는다. 배를 육지에서도 탈 수가 있다. 연습용 조정을 시멘트 바닥에 고정시켜 놓고 뙤약볕 아래서 노 젓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이파네마 해변과 코파카바나 해변은 연결되어 있다. 산 옆에 있는 것이 이파네마 해변이고 더 위로 올라가면서 코파카바나 해변이 된다. 바닷가의 모래는 곱고 아름답다. 물이 빠지니 모래가 거울처럼 변해서 산 모습이 환히 비쳤다.

일요일 시내를 걸어보았다. 성당이 문을 열었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성당 안에 꽉 차 있었다. 과학 전시관 에서 비행기 조종석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태워 주고 있었다.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에콰도르 소년과 설탕 덩어리 라는 뜻의 슈거로프산에 갔다. 커다란 딸기처럼 생겼으며 리우데자네이루의 어디서라도 보인다. 걸어서도 정상에 올라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밤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 강 구경을 마친 다음에 다시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므로 3일밤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직원은 컴퓨터에 예약사실을 입력할 터이니 염려 말라고 하였다. 나는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보관해 두었다.

버스를 타고 상 파울로 갔다. 430킬로미로 6시간 걸렸다. 상 파울로는 인구 1200만으로 브라질에서 제일 큰 도시다. 전철을 타고 예약해둔 호스텔을 찾아갔다. 전철이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든지 갈 수가 있었다.

호스텔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에 전천을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갔다.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큰 건물 나오고 그 안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없는 것이 없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과일 가게였다. 여러 가지 과일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쌓아 올려서 피라미드를 만들어 놓았다.

차이나 타운에 가 보았다. 큰길 옆에 조그만 광장이 있었다. 기념품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동양여자가 불고기를 구어서 팔고 있었는데 한국여자였다. 남편은 브라질 사람이었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중국의 길거리처럼 요란하게 꾸며 놓고 있었다.

호스텔에는 종류와 이름은 모르지만 하얀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털이 짧고 중간크기에 귀가 쫑긋 하였다. 나는 주로 개와 놀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있다가도 불이 낳게 달려왔다.

상 파울로 에서 밤 버스로 포스도이과수에 갔다. 1100 킬로미터이고 13시간 걸렸다. 종점이 아닌 길거리에 나를 내려놓고 갔다. 운전수에게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라는 도시로 갈 것이니 버스 타는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세시여서 추었다. 배도 고팠다. 상점이나 집들은 다 문이 닫혀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 까. 어떻게 해야 할 까. 그저 떨고 서있을 수만은 없어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이과수 폭포는 두 장소에서 보아야 만 한다. 아르헨티나 에서도 보아야 하고 브라질 에서도 보아야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폭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과수 폭포를 아르헨티나 쪽에서 먼저 보기로 결정을 해 둔 터였다.

날이 밝았다.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물어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시로 가는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설명서에 보면 거리는 30 킬로미터 이고 한 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미니버스가 왔다. 어디서 탔는지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요금을 지불했더니 무슨 전표를 하나 주었다. 버스가 아르헨티나 국경초소에 섰다. 내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서둘러 나왔다. 버스가 없다. 나를 두고 버스가 가버린 것이었다.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 두 시간쯤 지나서 버스가 한대 왔다. 손을 들었더니 섰다. 돈을 줄려고 하였더니 아까 받았던 전표를 달라고 하였다.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시에 온 것이다. 호스텔을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 그러나 어느 호스텔로 가야 할지는 설명서를 보고 미리 마음속에 정해 두었던 터였다.

호스텔을 정할 때 몇 가지 사항을 살핀다. 첫 번째는 가격 이다. 두 번째는 이 호스텔에 묵었던 사람들의 평가다. 다음에는 아침을 주는지 부엌이 있는지 위치가 편리한 곳에 있는지 하는 것을 따진다. 그러나100% 마음에 드는 호스텔은 찾기가 쉽지 아니하였다.

정류장에서 나와서 얼마 가지 아니해 호스텔 간판이 보였다. 들어갔다. 깨끗하고 정원도 있었다. 묵을 방을 가보았더니 시멘트 바닥에 단층 침대가 죽 놓여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고 또 피곤 했으므로 그냥 주저 앉았다. 이 호스텔에 3일 머 물었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 입장료를 아르헨티나 돈으로만 받았다. 아르헨티나 돈이 없다고 했더니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면 돈을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가게에 갔더니 돈을 그냥 환전해 줄 수는 없고 무엇이던지 기념품을 하나 사야만 거스름돈 형식으로 돈을 바꾸어 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 인형을 몇 개 샀다.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를 이틀 동안이나 보았다. 입장료도 두 번이나 냈다.

아르헨티나 쪽 폭포는 주 폭포로 가기 전에 작은 폭포들이 여러 개 있었다. 이 폭포들도 주 폭포에 비해서 작다는 것뿐 이지 상당히 큰 편이었고 아름다웠다. 첫날은 이 작은 폭포들만 보고 돌아왔다. 특이 한 것은 이 폭포수 물속에 새들이 살고 있었다. 제비처럼 생긴 새들 이었는데 폭포 물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폭포수가 쏟아지는 뒤쪽의 빈 공간의 바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적들로 부 터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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