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배낭 여행에서 제일 힘 드는 일중의 하나는 공항 이나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묵을 장소를 찾아가는 일이다. 유스호스텔을 애용한다. 값이 저렴하고 각국에서 온 젊은 배낭 족 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돔을 이용한다. 돔 이라고 하는 것은 방 하나에 침대를 여러 개 갖다 놓고 여러 사람이 같이 자는 방을 말한다. 침대는 보통 이층 삼층으로 되어있고 4인실 부 터서 20인실 까지도 있다. 이중에 침대 하나를 얻어서 자는 것이다. 남자나 여자가 따로 자는 방도 있고 혼숙 하는 방도 많이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영국의 런던에 도착하였다. 아무리 컴퓨터를 검색해 보았으나 로스앤젤레스로부터 케냐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었다. 날이 따뜻한 케냐로 직접 가고 싶었지만 하는 수없이 추운 런던을 거쳐야 했다. 런던에서 3일을 머문 후 다른 회사의 비행기로 갈아타고 케냐를 향해서 떠났다.
나이로비 공항에 내리니 새벽 4시였다. 공항 바로 옆에 있는 음식점에서 눈을 잠 간 붙이려고 하자 새벽인데도 까만 여자 종업원이 와서 음식을 시켜 먹으라고 성화를 부린다. 배가 아직 고프지 아니하여서 음식을 시켜먹을 생각이 없었다. 구석의 빈 의자에 가서 주저 앉았다. 눈을 감았다. 또 이 여자가 와서 음식을 시켜 먹으라고 한다. 아직 시간이 되려면 멀었지만 하는 수 없이 6시에 떠나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너갔다.

버스정류소에 흑인 중년 여자가 혼자 있었다. 말을 붙였다. ‘안녕 하세요’를 케냐말로 무엇이라고 하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바리약콕’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외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를 그 나라 말로 할 줄 알아야 한다. 봉변이나 강도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지인처럼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인사가 그 기본 이기 때문이다.
흑인 중년남자가 다가와서 나를 아는 체 한다. 누구냐고 했더니 아까 당신이 타고 온 터키항공 비행기를 자기도 타고 왔다고 말한다. 자기도 나이로비 시내로 가는데 나를 동행해 주겠다는 것이다. 백 년 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흑인 중년여자의 도움을 받아서 나이로비 시내에 가려고 마음 먹었었으나 흑인 중년남자를 따라 나섰다. 우리는 다 찌그러진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승객들은 나만 동양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현지 흑인들이었다.
버스는 사람을 짐짝처럼 많이 태워서 숨쉬기도 어려웠다. 그 흑인 중년남자 에게 버스 비 라고 말하는 금액의 동전을 주었다.
시내버스는 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이로비 국제공항의 뒷동네를 통해서 갔다. 길은 포장이 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구덩이가 군데군데 파져 있었다. 몸이 공중에 떴다가 가라앉을 때마다 어이쿠 어이쿠 하고 소리를 질러야만 하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이로비의 뒷동네의 아침은 가관이었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검은 사람들이 먼지가 뽀얗게 이는 흙 길을 분주히 오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연상 땅을 파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면서 무엇인가 팔고 있었다.
버스가 얼마를 가다가 아주 서버린다. 손님들더러 내리라고 한다. 흑인 중년남자 에게 시내에 다 온 것 이냐고 물었더니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고 말하였다. 흑인 중년남자는 다시 나에게 버스 비를 달라고 하였다. 아까 시내까지의 요금이라고 하는 금액을 주었는데 또 달라고 하여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주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고속도로로 갔으면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시내를 3시간이나 걸려서 왔다.
버스 종점은 시내 중심에 있었다. 때는 이미 12시가 넘어서 배가 고팠다. 가로수 밑 그늘에 앉아서 비행기 에서 준 밥을 안 먹고 아껴서 가지고 온 것을 먹기 시작했다. 배낭과 끌고 다니는 가방을 모두 열어놓 속의 내용물들이 다 보이도록 진열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서있는 사람들이 다 나를 훔쳐 보고 있었다.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케냐타 병원 앞에서 내렸다. 예약한 호스텔은 마툼바토 길의 하우스 33번 이었다. 배낭을 메고 끌고 가는 가방은 끌고 가면서 모르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은 포장이 되어 있지 아니 하여서 끌고 가는 가방이 몹시 덜컥거렸다.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하우스 33번지를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배 짝 마른 흑인 중년남자가 똑바로 가다가 왼쪽으로 꼬부라져서 조금만 더 가면 나온다고 하였다. 조금 가다가 어떤 청년이 골목에서 나오길래 주소를 보여주면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청년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서 왼쪽으로 나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온다고 하였다. 되돌아서 걷기 시작하였다. 나를 유심히 보고 있었던지 아까 길을 가르쳐 주었던 흑인 중년남자가 뛰어왔다. 내 앞을 가로막고는 똑 바로 가라고 하였다.
길을 물으면 사람들 마다 다르게 가르쳐 준다. 어떤 사람은 이리 가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리 가라고 말한다. 한 시간 넘게 해매 다가 간신히 하우스 33번을 찾았다. 대문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문을 두드리니 사람이 나왔다. 말하기를 호스텔은 이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여기는 없다고 하였다. 나는 울었다.
이 사람이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승용차 한대가 왔다. 불법 택시다. 1200 케냐 쉴링을 내면 호스텔이 이사간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주고 불법 택시를 탔다. 조금 가더니 나더러 차에서 내리라고 한다. 다른 여행객이 또 그 호스텔에 찾아왔으니 태우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차를 불러서 나를 인계하겠다고 하였다.
당신을 어떻게 믿겠느냐고 했더니 명함을 주면서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새 차가 왔다. 헌 불법택시기사는 새 불법택시 기사에게 돈을 주면서 뭐라고 뭐라고 말하였다. 새 차를 타고 새 운전수와 함께 다시 먼 길을 떠났다.
새 불법택시는 상당시간 달렸다. 호스텔은 참으로 먼 곳으로도 이사를 갔구나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었다. 한 시간 이나 걸려서 우리는 이사간 호스텔에 도착 하였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