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스페인 포르투갈 편
2013년 5월 75세의 나이로 로스앤젤레스 검찰청 범죄 피해자 보상국에서 19년 일하고 은퇴했다. 6월 1일 비행기로 뉴욕으로 갔다.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카사블랑카 공항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고 시내로 갔다. .
모로코를 와 보려고 했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잉그리드그만이라는 여배우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와 카사블랑카라는 영화의 여주인공이었다. 이 배우를 좋아했던 나는 카사블랑카에 와 보고 싶었다.
올란도에는 디즈니월드가 있다. 여기서 신기한 것을 보았다. 모로코의 배꼽춤이었다. 조그만 아가씨가 나체로 춤을 추었다. 선정적인 춤이었지만 성욕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안았다. 보석 속에 감추어진 몸매와 춤 사위는 예술이었다. 이 춤을 다시 보고 싶었다.
역 앞에 공원이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뉴욕 에서 사가지고 간 햄버거와 럼주를 먹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먹을 것을 준비해 가지고 간다. 내린 지역은 낯설고 음식점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 시작했다. 호텔은 메디나라고 하는 구도시 구역에 있었다. 호텔 주소를 적은 종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걸었다. 메디나는 카사블랑카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곳이다.
상점들이 죽있는데 간판이 아랍어로 쓰여있었다. 지금까지 다녔던 나라는 영어의 알파벳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랍글씨로 간판이 쓰여있는 나라는 처음 보았다. 모로코는 불란서 식민지였기 때문에 불어는 통하지만 영어는 안 통했다.
길거리에는 몸이 불구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난쟁이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메디나는 담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정문이 있었는데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복잡하여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렸다.
돌건물이고 길이 좁았다. 어느 상점으로 들어갔다. 주소적은 종이를 보여주면서 호텔이 어디 있느냐고 손짓 발짓으로 물어보았다. 소년을 내 앞에 세웠다.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소년은 앞장서 걸었다. 골목길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참을 걸었다. 호텔에 도착했다.
예약을 하고 온 호텔이었다. 허름한 독방으로 안내 되었다. 밥도 안주고 음식도 만들어서 팔지 않았다. 배가 고파 밖으로 나갔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냄새를 따라 갔더니 젊은 남자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허름한 가게에서 생선을 튀겨 팔았다. 테이블도 없고 의자도 없었다. 사람들이 서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값이 저렴하였다. 생선 튀긴 것을 사가지고 호텔로 왔다.
모로코 돈은 디르함으로 미화 1달러에 10 디르함이었다.
카사블랑카는 스페인어로 하얀 집 이라는 뜻인데 불란서 식민지 시절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전에는 안파 라고 불렀다고 하였다.
모로코는 회교 국가인데도 술을 팔았다. 길거리에 저렴한 술집이 많이 있었다. 중년남자 손님이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북한에서 왔다고 했다. 한국이라고 하면 다시 남한이냐 북한이냐 라고 묻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하였다.
이분이 반색을 하면서 악수를 청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이분은 이 세상에서 말로나마 미국을 혼내주는 나라는 북한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갑다고 하면서 술을 사주었다.
수레에 연탄불을 가지고 다니면서 달팽이를 삶아서 파는 행상이 있었다. 사가지고 이쑤시개로 파 먹었다. 달팽이도 맛있고 국물도 맛있었다. 공터에서 뱀을 홀리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이 되자 분수대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물이 뿜어 올라 가자 사람들이 환성을 질렀다.
카사블랑카에서 볼거리는 하산 2세 회교사원 이었다. 바닷가에 있었다. 대리석 건물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밤기차를 타고 탠지어로 갔다.
탠지어는 모로코 의 최북단 도시로 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 호스텔은 메디나라는 구 도시 지역에 있었다. 경사가 심한 언덕 위에 있었다. 골목이 좁아서 택시가 호스텔까지 못 가고 도중에 나를 내려놓고 갔다.
호스텔에 예약한 날짜보다 하루 일찍 도착했다. 침대가 없다고 했다. 다른 호스텔도 만원이어서 저렴한 호텔을 소개해 주었다. 짐을 맡겨두고 몸만 나왔다.
메디나는의 꼬불꼬불한 길을 걸어가니 큰길이 나왔다. 찾아가는 곳은 런던호텔이었다. 두 젊은이에게 길을 물어보고 돌아섰는데 계속 따라왔다. 혼자서 갈수 있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계속 따라왔다. 호텔 앞까지 따라왔다. 안내해 주었으니 돈을 달라고 했다.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시내에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탁자 위에 금옷을 입고 금 모자를 쓴 사람이 앉아 있었다. 머리만 있고 몸통은 없었다. 얼굴과 손만 보이고 다른 부분은 모두 금 옷으로 가려져 있었다. 얼굴과 두 손의 크기는 정상 이었다. 돈을 주자 받지 아니하고 오른손으로 아래를 가르쳤다. 거기에 금주머니가 있었다. 돈을 넣었다. 난쟁이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호스텔 밑에 어선부두가 있었다. 저녁이 되니 배들이 고기를 산더미처럼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 생선을 구어서 파는 음식점이 여러 개 있었다. 맛도 있고 가격도 저렴 하였다.
사람이 없는 길가에 젊은 여자가 어린 딸을 데리고 있었다.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기가 한국산이었다. 여자는 주위를 보더니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걸었다.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였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니 스페인으로 가는 연락선 부두가 있었다. 다음날 타리파로 갔다.
탠지어와 타리파 사이에는 지중해 입구가 있었다. 40킬로미터 이고 배로 두 시간이 걸렸다. 타리파 항구에 배가 도착하자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이 버스로 타리파로 갔다. 요금은 뱃삯에 포함되어 있었다.
타리파는 인구 2만명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마리아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공원이 있었다. 가는 길에 옛날에 사용하던 대포알을 쌓아둔 곳이 있었다. 대포알들은 그저 하나의 쇳덩어리가 아니라 예술작품이었다. 대포알 하나 하나에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 저 있었다.
버스로 지브롤터에 갔다. 45킬로미터이고 한 시간 걸렸다. 어퍼 록이라는 바위산은 타리파에서도 환히 보였다.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지브롤터 상주 인구는 3만명일데 방문객은 일년에 일천 만 명을 상회한다고 하였다.
지브롤터는 긴 조그만 반도이다. 스페인 땅이지만 300년 전에 영국에 귀속되었다. 스페인의 찰스 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영국은 자기들이 미는 사람을 스페인의 왕으로 세우려 하였고 스페인은 다른 사람을 왕으로 추대하여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붙었다. 영국이 이겨서 지브롤터를 빼앗았다. 주민의 대부분은 영국 사람이었다.
들어갈 때 여권 검사를 하였고 돈도 받았다. 안으로 들어가는 버스가 있었지만 걸어갔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넓은 광장이 나왔다. 광장을 뺑둘러서 상점들이 빼곡히 있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영국 물건을 사러 온다고 했다.
지브롤터 앞에 오목한 바다가 있었다. 요트들이 정박해 있었다. 어퍼 록에는 바버리 마카크 원숭이가 살지만 보지 못했다.
타리파에서 기차를 타고 그라나다 로 갔다. 300킬로미터이고 5시간이 걸렸다. 기차에서 내릴 때 한국 아가씨를 만났으나 가는 방향이 달라서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호스텔을 찾아갔다.
스페인 남부지방을 안달루시아라고 한다. 세 개의 주요 도시가 있다. 그라나다, 코르도바, 그리고 세빌 이다. 이 지방은 오랫동안 무어족의 지배를 받았다. 많은 회교 유적지가 있었다.
그라나다에는 알람브라 궁전이 있다. 세계 각처로 부터 관광객들이 모여들었다. 넓은 언덕에 지어놓은 붉은색을 띠는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건물 속에 있는 문양이나 조각은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회교에서는 생명체의 조각이나 그림을 금지 한다. 섬세한 무생물 조각이나 문양으로 그들의 예술성을 달랬다. 궁전보다 수 십 배나 더 크고 넓은 정원이 옆에 있었다. 여러 가지 수목과 화초가 있었다.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렸는데 나이팅게일 이라고 하였다. 이슬람 왕족들은 밖에 나가지 않고도 살 수가 있었다.
정원 입구에 자원 봉사자 남자 노인들이 있었다. 나를 보더니 놀란다. 더워서 모자에 구멍을 만들어 쓰고 다녔는데 그것을 보고 나를 놀렸다. 환기 통 이라고 말했다. 피곤해서 나무 그늘에 누어서 잤다.
언덕으로 올라가니 돌집이 있었다. 암석을 파서 그 속에 집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내려오다 좋은 구경을 하였다. 젊은 남자 한 사람과 아름다운 두 아가씨가 길가에 나무판자를 깔았다. 청년이 기타를 치면서 쉰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아가씨가 판자위로 올라가서 춤을 추었다. 팔을 공중으로 치켜 올리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춤을 추었다. 격렬한 플라멩코 춤이었다.
이 여자의 춤이 끝나자 다른 여자가 올라가서 또 추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 모자를 벗고 돈을 걷었다. 음악과 춤사위가 격렬 하면서도 슬펐다. 집시 들이었다.
호스텔에는 기타가 있었다. 기타를 치면서 해 뜨는 집을 노래했다. 중년 신사가 따라 불렀다. 네델란드 사람인데 비즈니스로 와있었다. 내 여권을 보더니 놀란다. 노인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나라를 다녔냐는 것이었다. 호스텔을 떠날 때 나를 위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라나다에서 버스로 코르도바에 갔다. 200킬로미터로 3시간 걸렸다. 코르도바는 그라나다보다 훨씬 더웠다. 호스텔 방에는 단층 침대가 네 개 있었다. 나만 남자고 세 침대에는 서양 아가씨들이 잤다. 처녀들은 핫팬티만 입고 돌아 다녔다.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었다. 로마 다리라고 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 로마가 스페인을 지배할 때 만든 다리라고 했다. 돌을 강 밑에서 부터 쌓아 올려 만들었다.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다리 중간중간에 구멍을 뚫어 놓았다.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시내에 코르도바 회교사원이 있었다. 조각이과 문양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내부에 수십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로마시대에의 유적들이 폐허가 된 체 곳곳에 있었다.
코르도바에서 버스로 세빌로 갔다. 140 킬로미터로 2시간 걸렸다. 옆 좌석에 모로코 신사가 앉아 있었다. 세빌이 가까워 지자 큰 강이 나왔다. 이분이 강 이름이 과달키비르 강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랍어로는 와디알카비르 강이라고 하였다. 무어족 즉 모로코의 지배를 받았다고 자랑하였다.
세빌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이 있다. 세비야 대성당이다. 기독교가 회교를 몰아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지었다. 1402 년에 짓기 시작하여 100년이 걸렸다. 성당 건물이 두개 있었다. 주위에 벽을 쌓아 놓았다. 한 바퀴 돋는데 한시간 걸렸다.
마리아루이사 공원에 갔다. 수 백 그루의 아카시아 나무가 있었다. 이 나무들은 노란 황금색 꽃을 피웠다. 꽃잎이 떨어져서 땅에 황금빛 침대를 만들어 놓았다. 황금침대에 누어서 늘어지도록 잤다.
세빌에서 버스로 포르투갈 의 수도 리스본으로 갔다. 밤 버스는 만원 이었고 10시간이 걸렸다.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맨 뒤 가운데 좌석에 앉았다. 앞은 통로로 다리를 뻗을 수 있었다. 옆에 나이든 일본 청년이 앉았다. 다리를 내 다리에 포개질 정도로 해서 통로 쪽으로 다리를 뻗었다. 내 좌석까지 침범해 앉았다.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지친 나는 리스본에 빨리 도착 하기만 바랬다. 내리면 한방 갈겨 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리스본에 도착하였다. 한방 갈겨주려고 그 사람 곁으로 갔다. 그러나 갈길 수가 없었다. 그 사람 옆에는 키가 크고 건장한 청년이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를 믿고 무례하게 했는지 알 수가 있었다.
전철역이 버스 종점 옆에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려서 예약한 호스텔을 찾아갔다. 방에는 나 말고도 두 사람의 손님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중년의 미국 남자였다. 이혼한 후로 마음을 달래고저 자전거를 타고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한 사람은 처녀는 지났고 중년은 되지 않은 아름다운 폴란드 여자였다. 영국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휴가를 얻어서 리스본에 왔다. 이 여자가 말하기를 자기는 한가지 목적 때문에 리스본에 왔다고 했다. 파두 음악을 직접 들어보고 싶어서다. 흐느끼는 듯 절규하는 듯 가슴을 울리는 음악이다. 음반으로 들어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직접 사람이 부르는 것을 들으러 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나 본 혼자서 다니는 배낭 족들은 다 사연이 있었다.
후일 집에 와서 파두라는 음악을 들어 보았다. 마리사라는 가수가 불렀다. 가이바커가 트럼펫을 불었다. 심금을 울리는 소리였다.
폴란드 여자는 나더러 같이 다니자고 하였다. 혼자서 왔고 처음 와보는 곳이어서 위험할지도 모르니 같이 다니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러자고 하였다.
리스본은 항구도시다. 타구스 강에 자리잡고 있다. 바다를 보려면 벨렘으로 가야 했다. 이곳은 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있었다. 돌로 지은 벨렘 탑이 있었다. 등대가 설치되어 있고 적의 배가 들어오면 공격할 수 있는 포대가 있었다.
슈퍼마켓을 찾아갔다. 맥주와 안주를 사가지고 마켓 모퉁이의 그늘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큰 개 한 마리가 언덕 위에서 내 앞으로 뛰어 내렸다. 젊고 잘 생긴 청년이 뒤따라 뛰어 내렸다. 미안하다고 말 했다. 개를 사랑하는 나는 괜찮다고 했다. 개를 사랑하는구나 라고 말했더니 아미고 데 꼬라손 즉 가슴의 친구라고 말했다.
리스본 시내 중앙에 광장이 있었다. 로시우 광장이다. 리스본 사람들은 누구와 만날 때 이곳을 이용한다고 했다. 길고 높은 대리석 기둥이 세워져 있고 위에 동상이 있었다. 뻬드로 4세 왕의 동상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인 도나 마리아 국립극장이 있었다.
다음날 상조르제 성을 찾아갔다. 상 조르제는 성인 조지라는 뜻으로 용을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성은 높은 산에 세워져 있고 타구스 강을 내려다 보고 있다. 대포를 설치해 놓았다. 로마시대 부터서 존재했고 이슬람시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 되었다고 했다. 밑에서부터 걸어서 올라갔다. 경사가 심한 길에 현대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땅에 깊이 박힌 영구 전시품이었다.
더 올라가니 왼쪽으로 판자 문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상으로 오르는 지름길이었다. 좌우양편으로 큰 소나무들이 있었다. 더 가니 물 웅덩이 하나가 있었다. 올챙이 보다 좀 더 큰 물고기들이 살고 이었다.
눈을 의심하였다. 물고기들은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때 세어보니 손가락 발가락이 다섯 개씩 있었다. 지느러미는 몸 밖으로 나와 있었다. 물고기가 진화해서 동물이 되고 사람이 되었다고 학교에서 배웠다. 조상들이 여기에 있는 것이었다. 많이 걸어서 피곤해 졌다. 그늘에 앉아서 싸가지고온 점심을 먹고 그 자리에 쓰러져서 잤다.
폴란드 여자와는 같이 다니지 않았다.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타이치에 나오는 목과 허리운동 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리스본에서 밤 기차를 타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갔다. 밤새도록 달려서 아침에 도착했다.
마드리드는 대중교통 수단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찾아간 호스텔은 지금까지 가본 호스텔 중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접수부에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앉는 자리를 높게 만들어 놓았다. 아가씨들을 우러러 보면서 말해야만 했다.
호스텔은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비누나 화장지도 최고급으로 갖추어 놓고 있었다. 주방시설이 잘되어 있었고 모든 것이 전기로 작동 되었다. 8인실 돔 방에 짐을 풀었다. 주방으로 내려갔다.
참으로 오래 만에 젊고 아름다운 동양 아가씨가 있었다. 라면을 끓이고 있었다. 전기 레인지가 작동이 안 되었다. 배가 몹시 고픈지 찬물에 라면을 말아서 그냥 먹으려고 했다. 기다리라고 말하고 접수처로 갔다. 접수처 아가씨가 레인지를 작동 시켜보려고 애써도 안 되었다.
보았더니 머리 위로 전자 오븐이 있었다. 라면을 받아서 전자 오븐에 끓여 주었다. 처녀는 부산 대학교 2 학년 학생이라고 하였고 이름이 김현정 이라고 했다. 지금 막 도착하였고 내일은 바르셀로나로 간다고 하였다.
우리는 둘 다 오늘 도착하였던 터라 마드리드에 대해서 뭘 몰랐다. 그래도 저녁을 먹고 길로 나섰다. 물어서 물어서 갔더니 무지하게 큰 길이 나왔다. 불이 환하게 켜있고 큰 건물들이 있고 차도 많이 다녔다. 밤이 깊었으므로 그만 돌아가자고 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얼굴이 검은 동양남자였다. 장미꽃을 들고 있었다. 누구냐고 했더니 방글라데시 사람인데 꽃을 팔고 있다고 했다. 한국말을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더니 그전에 한국에서 일 했다고 하였다. 왜 한국으로 다시 가지 아니하고 여기로 왔느냐고 물었더니 한국 비자는 받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방글라데시에는 누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마누라와 아들과 딸이 있다고 하였다. 여기 올 때 마누라가 뭐라고 하더냐 라고 물었더니 가지 말라고 울었다고 했다. 도로 가지 그러느냐고 했더니 말 대신에 장미꽃 한 송이를 우리 아가씨에게 주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다른 손님에게는 얼마에 파느냐고 물었더니 한 송이에 1유로를 받는다고 했다. 꽃 값을 지불했다.
우리 아가씨는 영어는 좀 하는데 스페인어는 올라 한 마디만 했다. 그 말이면 다 통한다고 하였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올라가 안녕하세요와 같은 뜻이라고 말했다. 올라는 영어의 헬로 와 같은 뜻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였다.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었다. 스페인 사람들이 있었다. 아가씨에게 ‘꼬모 뿌에도 이르 아 까예 까르멘’ 이리고 물어 보라고 했다. 호스텔 가는 길을 찾았다.
그래가지고 어떻게 스페인에 올 생각을 하였냐고 물어 보았다. 어떻게 되던지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왜 혼자 왔냐고 하였더니 그전에는 친구랑 같이 다녔는데 혼자 다녀보고 싶었다고 하였다. 용감한 처녀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날 아가씨는 떠났다.
마드리드는 큰 도시이고 볼 것이 많이 있었다. 어제 밤에 갔던 큰길을 찾아갔다. 이름이 까예 그랑비아였다. 큰길이라는 뜻이다. 길의 끝에는 아름다운 레띠로 공원이 있었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들과 조각들이 많이 있었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도 있었다. 다람쥐와 토끼들도 있고 이름 모를 새들도 시끄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카사 데 캄포에 갔다. 올리브 나무가 울창 하였고 마드리드 동물원이 있었다. 다른 날에는 후안 칼로스 공원에 갔다. 여기서 아주 진기한 구경을 하였다. 가지고 간 점심을 벤치에 앉아서 먹고 있었다.
건너편 잔디 위에 젊고 아름다운 두 아가씨가 옷을 벗었다. 담요를 깔더니 그 위에 누웠다. 일광욕을 하는 것이었다. 해가 뜨거워지자 이리 뒤척이고 저리 돌아눕고 하면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했다. 여자의 몸이 산 같기도 하고 바다 같기도 하고 꽃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하고 능선 같기도 하고 골짜기 같기도 하였다. 어떤 조각 보다도 아름다웠다.
골목길 입구에 울긋불긋한 옷을 입고 짙은 화장을 한 여자들이 옹기종기 서있었다.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했더니 몸 파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20유로라고 했다. 다음에 오겠다고 했다. 꼭 오라고 하면서 미소 지었다.
우리 아가씨 김현정이 바르셀로나로 부터 돌아왔다. 호스텔 식당에서 각자가 준비한 저녁을 먹었다. 아가씨는 한국에서 싸가지고 온 음식만 먹었다. 밥 김치 라면 등 포장된 상품이었다.
나는 우유하고 빵하고 과일을 먹었다. 나는 말하였다. 우유를 가르치면서 이것은 나의 된장국이요 빵을 가르치면서 이것은 나의 밥이요 과일을 가르치면서 이것은 나의 김치요 라고 말했다.
저녁을 마치고 우리는 술을 마시러 갔다. 맥주 집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방이 있었다. 쿠바에 갔을 때 만났던 한국 아가씨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다음날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