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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안옹왕 동상도 보고

비엔티안

비엔티안에 도착하니 날은 환히 밝아 있었다. 정류소는 넓었고 한쪽 켠은 전부가 음식점이었다. 음식점 전면은 문도 없이 툭 터져있었다. 맨 땅에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었다. 팍세에서 사온 즉석 김치밥을 먹었다. 맥주 큰 병을 하나 샀다. 밥 먹을 때 술을 먹는다. 거친 음식도 잘 넘어가기 때문이다.

호스텔을 찾아가야 한다. 버스 정류장 앞에 커다란 간판을 세워 놓았다. 비엔티안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수도다. 메콩강에 접해 있고 인구는 80만명이다. 비엔티안은 불란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이름이고 라오스어로는 ‘위양짠’이라고 불렀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호스텔의 주소를 보여 주면서 어디서 버스를 타느냐고 물어 보았다. 청년 한 사람이 다가왔다. 5만킵을 주면 툭툭 택시를 태워 주겠다고 했다. 2만이면 가겠다고 하였다.

지도 있는 데로 돌아왔다. 아침도 먹었겠다 아직 시간은 이르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오늘 해중으로 호스텔만 찾아가면 되는 것이다. 시멘트 벽에 기대 앉아서 잠을 청했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아까 그 청년이 와서 깨웠다. 2만킵에 데려다 주겠다는 것이었다. 툭툭에는 짐이 잔뜩 실려있고 현지 노인이 앉아 있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었다.

호스텔 이름은 ‘시옴’이었다. 메니저의 이름은 ‘필립’이었다. 호주사람인데 여행 왔다가 주저 앉았다고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많은 배낭 여행객들이 호스텔에서 일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다음 행선지로 떠날 경비를 벌고 있는 것이었다.

손님은 모두 서양 사람들이었고 동양 사람은 나 혼자였다. 동남아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배낭족은 거의가 유럽의 젊은이들이었다.

배낭 여행을 하면서 50세가 넘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호스텔에는 72세된 영국 할아버지가 와있었다. 부인과 이혼하고 울적해서 왔다고 했다. 호스텔은 친구가 말해주어서 알았다고 하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외국 여행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 여행이 좋아서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사연이 있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거나 배우자와 이혼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 전에 여행 다닐 때는 컴퓨터를 가지고 다니지 안았다. 직장 컴퓨터로 비행기나 호스텔 예약을 했다. 여행책자를 이용하여 여행지 정보를 구하였다. 은퇴를 하고 삼성 태블릿을 샀다.

영국 할아버지가 태블릿 사용하는 것을 보더니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자기도 하나 사야겠다고 말했다. 깜짝 놀랐다. 어떻게 선진국 시민이 아직도 컴퓨터가 없을까. 컴퓨터가 일반화 된지 얼마 안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콩강으로 갔다.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장수의 동상이 있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허리에는 큰 칼을 차고 있었다. 오른팔을 강을 향해 뻗고 있었다. 청년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보았더니 모르겠다고 하였다. 중년 신사에게 물어 보았더니 모르겠다고 하였다.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물어 보았더니 비엔티안 왕조의 안옹 왕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블랙 템플에 가보았다. 절이 아니라 거대한 검은 돌탑이었다. 주변에 쇠사슬을 쳐놓았다. 안에는 잔디를 심어 놓았다. 겉만 보고 지나갔다.

절을 찾아 갔다. 여러 가지 문구가 한문으로 적혀 있었다. 나무아미타불과 심상사성이란 말이 있었다. 나무아미타불은 부처님께 귀의 해서 극락정토에 이르는 말이라고 하였다. 심상사성은 뜻을 알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알아보았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으면 먼저 마음 속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은 블랙 템플을 거쳐서 왔다. 안의 잔디밭 그늘에 누었다. 잠이 들었다. 얼굴이 따끈하여 눈을 떴다. 햇빛이 얼굴에 와있었다. 탑은 원형이어서 그늘이 금방 비껴가 버렸다. 몸을 돌려서 그늘로 이동했다. 금방 햇빛이 얼굴에 닿았다. 또 몸을 돌려서 그늘로 갔다. 한참을 자다 보니 영 햇빛이 오지 않았다. 밤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라오스의 팍세…제3의 도시인데…

팍세

팍세는 캄보디아의 씨엠립에서 제일 가까운 라오스의 도시다. 해외 여행시 한 지점으로 부터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육로 가는 방법이 가장 흔하다. 그러나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씨엠립으로 부터 이름 모를 회사의 비행기를 타고 팍세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면 10시간이 걸리는데 비행기는 한 시간에 도착하였다. 탑승객 중에 배낭을 맨 사람은 나 혼자 뿐 이었다.

공항 이민국 직원이 미화 35달러를 받고 커다란 비자를 여권에 붙여주었다. 밖으로 나오니 택시도 없고 버스도 없다.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청소하는 아줌마에게 호스텔 주소를 보여 주면서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 하였다.

아주머니 청년 한 사람을 데리고 왔다. 라오스 돈 2만킵을 주었다. 말없이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미화 1달러는 8000킵이니까 20000킵은 미화로 3달러쯤 되었다.

호스텔은 메콩 강가에 있었다. 이 호스텔은 호스텔이 아니라 호텔이었다. 독방을 나에게 주었다. 2층과 3층은 호텔 방이고 1층은 음식점으로 사용 하고 있었다. 주인 남자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주인 여자는 홀을 관리하고 있었다.

세 살 난 아들이 있는데 내 지팡이를 가지고 놀기 좋아하였다. 여기는 라오스인데 주인이나 종업원들은 모두 월남 사람들이었다. 라오스는 월남보다 경쟁이 덜 심하다고 말하였다. 주인 여자는 라오스 말을 유창하게 하였다.

동남아에 대한 속담이 생각났다. 월남사람들은 벼를 심고 캄보디아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것을 눈으로 바라보며 라오스 사람들은 벼가 자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하였다. 얼른 듣기에는 라오스 사람들은 게으르다 말같이 들린다. 그러나 참뜻은 모든 나라 국민들은 기후와 풍토에 맞게 살아 간다는 뜻이다. 라오스는 월남이나 캄보디아 보다 더 더웠다.

팍세는 옛날에 참파삭이라는 왕국의 수도 이었다. 뒤에 라오스와 합병하였고 지금은 라오스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인구는 9만명이다. 걸어서 시내로 갔다. 쎄도네 강으로 갔다. 다리 건너에 커다란 부처의 좌상이 보였다.

다리 이름을 써 붙여 놓았다. 라오스 – 니뽕 다리였다. 니뽕은 일본의 다른 이름이다. 일본은 이 다리를 놓아준 대가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라오스로부터 챙기고 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는 길었다. 다리 밑의 그늘에서 잤다. 돌아올 때는 툭툭 택시를 탔다.

맛있는 냄새가 났다. 아주머니가 꼬치 구이를 밥하고 해서 팔았다. 즉석 김치도 만들었다. 작은 절구통에 마늘 고추 생 멸치젓을 넣고 절구로 찧고 비볐다. 이 비빈 것을 채소 위에 얹어서 밥하고 주었다. 기막히게 맛이 있었다.

재래시장에 갔다. 사방이 터지고 지붕만 있는 음식점이 있었다. 아주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을 잘게 썰어서 후라이팬 같이 생긴 웍 이라는 조리기구에 담았다. 반쯤 복은 다음 채소 파 마늘 고추 가루 소금을 첨가하였다. 다 볶아지면 접시에 담아서 밥 하고 같이 손님에게 주었다.

음식을 주문하고 싶은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여자가 쭈구미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여자가 나를 쳐다 보더니 뭐라고 말을 하였다. 나는 손님들의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저런 식으로 해달라는 뜻이었다.

빈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한참 만에 음식이 나왔다. 울고 싶었다. 쭈꾸미를 물에다 푹 삶아서 3분지 1로 쪼그라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밥 날라주는 아가씨의 손목을 잡았다. 다른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손가락으로 밥을 가르쳤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밥을 가져왔다. 쭈꾸미 삶은 것과 밥을 소금을 쳐서 먹었다.

절에 가보았다. 스피커를 통해서 염불하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사람이 앓는 소리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안으로 들어가 갔다. 돌탑이 여러 개 있었다. 여러 가지 짐승과 사람의 모습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한 면에는 사람들의 이름을 죽 적어 놓았다. 돈을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다른 면에는 얼굴 사진을 여러 장 붙여 놓아 놓았다. 죽은 사람들이었다.

호스텔 여주인을 통해서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 가는 밤 버스를 예약하였다. 침대버스였다. 침대 한 칸에 두 사람씩 잔다고 했다. 혼자 자겠다고 하였더니 두 사람 요금을 내라고 하였다. 여자랑 같이 자겠다고 하였더니 안된다고 하였다. 남자는 남자끼리 자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르는 남자와 얼굴을 맞대고 잘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두 사람 요금을 지불 하고 표를 샀다. 버스는 밤 10시에 출발 한다고 하였다. 밤 9시까지 방에 있다가 버스 타러 가겠다고 하였다. 하루 밤 요금을 더 달라고 하였다. 사정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루 밤 숙박비를 더 주었다.

배낭은 메고 가방은 끌고 버스정류장을 향해 절둑 거리며 걷기 시작하였다. 누가 내 가방을 나꿔 챘다. 놀라서 쳐다 보았더니 호스텔에의 남자 종업원 이었다. 여주인이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 주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정류장에는 수 십대의 버스가 있었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호스텔 종업원이 내가 타야 할 버스도 찾아주고 짐도 침대까지 날라다 주었다. 여주인에게도 고맙다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비엔티안까지는 670킬로 미터로 11시간이나 걸렸다.

2014년 동남아 5개국 여행

2014년 1월 1일부터 3월 31일 까지 석 달간 76세의 나는 혼자서 배낭을 메고 동남아 5개국을 여행 하였다.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가본 나라는 월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보르네오섬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였다.

로스앤젤레스 에서 비행기를 타고 중국의 광저우 에 도착하였다. 10시간을 머문 다음 비행기를 바꾸어 타고 월남의 하노이에 도착 하였다. 비행기 회사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쉴 수 있는 호텔을 제공 하였다.

호텔에만 있자니 심심해서 밖으로 나갔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먹고 싶은 음식이 어디 있는지 값이 얼만지 알아보았다. 호텔에 돌아와서 미화 5달러를 바꾸었다. 10달러가 환전의 최소 단위라고 말했다. 사정을 설명하고 중국에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5불을 바꾸어 주었다.

고량주 한 병과 배추 절인 것 반 포기를 샀다. 음식점으로 가서 마시고 먹었다. 호텔에 돌아와서 골아 떨어졌다.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누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눈을 떴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아서 사람이 올라 온 것이었다.

월남은 길게 생긴 나라다. 북쪽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내려갔다. 하노이 하롱베이 동호이 후에 호이안 다낭 달라트 그리고 호지민 시였다.

사이공에서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풀 에 도착 하였다. 버스로 싱가포르 에 갔다. 비행기를 타고 보르네오 섬의 쿠칭 시로 갔다. 쿠칭 에서 비행기로 쿠아라룸풀 로 갔다. 쿠아라룸풀 에서 비행기로 사이공으로 돌아왔다.

사이공 에서 버스로 캄보디아 의 프놈펜으로 갔다. 버스로 씨엠리프로 갔다. 앙코르왓트 를 구경하고 비행기로 라오스의 팍세 로 갔다. 버스로 라오스 의 수도인 비엔티안 으로 갔다. 버스로 방 비엥 으로 갔다. 방 비엥은 산수가 아름다웠다. 거기서 절 의 도시인 루앙 프라방 으로 갔다.

루앙 프라방 에서 비행기로 하노이 에 돌아왔다. 하노이 에서 싸파 로 갔다. 싸파 에서 다시 기차로 하노이 에 돌아왔다. 하노이 에서 비행기를 타고 광저우 를 거쳐서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다.

참으로 길고도 긴 삼 개월 간의 여정 이었다. 힘들고 지쳤지만 그래도 재미 있었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