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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파라과이 이타이푸댐에 서다

좀 걸었더니 동네가 나왔다. 사람들이 나를 보더니 자기들끼리 수근거린다. 어떤 아이 엄마가 반색을 하면서 내게로 왔다. 자기 집에 가서 차를 한잔 하자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나더러 영화 가라데 키드에 나오는 팻 모리따라는 배우가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이 말을 외국여행 때 하도 많이 들어서 이골이 난 터이지만 파라과이 이역 땅에서 이 말을 들으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타이푸 구경은 못했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다음날 우정의 다리를 걸어 건너서 브라질로 갔다. 다리 바로 직전에 파라과이 이민사무실이 있었다. 들어가서 파라과이에 왔었다는 도장을 찍어 달라고 하였더니 안 된다고 하였다. 왜 그러냐고 하였더니 미국여권은 파라과이 도착 전에 파라과이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당신 여권을 보니 비자도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파라과이 비자도장이 없으니 입국했었다는 도장도 찍어 줄 수가 없다고 하였다.

다리 밑을 내려다 보았더니 저 깊은 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은 푸르고 깊었다. 다리는 길었고 중간 중간에 오목하게 파진 곳이 있어서 쉬어갈 수 있었다. 사가지고 온 닭 모가지순대와 럼주를 푸른 물을 바라보며 취하도록 먹었다.

다리를 건너가 브라질 이민국 사무실에서 입국수속을 마쳤다. 시내버스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호스텔을 찾아갔다. 어떤 손님이 나더러 버스를 잘못 탓 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조수가 괜찮다고 하였다. 자기가 내려 주는 데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고 하였다.

버스를 내렸는데 한적한 곳이었다. 조금 가니 남자노인 두 사람이 가게 앞에 앉아서 술을 먹고 있었다. 종이를 꺼내 들고 어떻게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가는 길은 길 가운데 중앙선에 잔디를 심어놓고 큰 나무들도 있었다.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았다. 잔디 위로 올라가서 걸었다.

할머니 한 분이 집 앞에 있었다. 종이를 꺼내 들고 물어 보았더니 모르겠다고 한다. 나는 힘들고 걷기도 싫어졌다. 여기서 좀 자자고 했더니 안 된다고 했다. 조금 더 가니 승용차 한대가 지나았다. 손을 들었더니 섰다. 젊은 청년이 타고 있었다. 길을 물었더니 차를 타라고 하였다.

차가 골목길로 들어서니 호스텔이 나왔다. 돔 방의 바닥은 나무 판자였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게 되어있었다. 단층침대였다. 많은 서양 젊은이들이 와 있었다. 동양 사람은 나 뿐이었고 노인도 나 혼자였다.

내가 왔던 길에서 반대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큰길이 나오고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버스는 다른 데서 출발해서 오는데 손을 들면 태워주었다. 포스이과수의 모든 시내버스는 어디서 출발하던지 모두 종합 터미널로 모인다. 여기서 자기가 가는 곳의 버스를 타고 가면 된다. 아주 편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텔에 짊을 풀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타이푸 발전소에 갔다. 입장 표는 공원에서 팔았고 대형버스로 사람을 싣고 발전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원을 따라다녀야 했다. 댐 밖의 경치도 구경 시켜주었고 발전소 안의 설비와 발전소 운전통제소도 보여주었다. 통제서는 안으로 들어 갈 수는 없고 대형 유리를 통해서 밖에서 구경하였다.

브라질과 파라과이 양국이 발전소에 대한 권한을 반반씩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발전소의 모든 시설은 두 나라가 같이 운영 하는데 시간을 반반으로 나누어서 한다고 하였다.

구경이 끝나니 차에 태우고 댐의 중간에 있는 브라질과 파라과이의 국경이 닿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지만 국경선을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과수 폭포에 갔다. 정문을 들어가면 입장객들은 공원버스를 타고 폭포로 가야 한다. 한참을 달려서 폭포 앞에 내려놓았다. 판자 길을 따라가면 폭포 밑에 다다르게 된다. 가까운 곳에서 폭포를 올려다 보게 되어 있었다. 규모가 대 단 하여서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더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폭포구경을 마치고 위로 올라가니 음식점도 있었고 폭포를 같은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

브라질 이과수 폭포에서 흠뻑 젖다

다음날은 주 폭포를 향해서 걸어갔다. 하늘에서 오색 빛 찬란한색종이 들이 쏟아져 내렸다. 색종이를 뿌리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색종이인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형형색색의 나비들이었다. 이렇게 많은 나비들은 처음 보았다. 나비들이 나에게 와서 내려 앉는다. 머리 위에 앉고 팔에도 앉고 옷에도 앉는다. 털어버릴까 하다가 가만히 있었다.

주 폭포 가까이 가자 화장실이 나왔다. 화장실 주변의 땅은 온통 꽃밭이었다. 화장실에 무슨 꽃인가 싶어서 잘 보았더니 나비들이었다.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땅바닥에 내려와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가까이 가도 도망을 안 간다. 나비들이 땅에서 철분이나 소금 같은 영양소를 섭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주 폭포 바로 옆에 구경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물이 가까워서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첨언 하고 싶은 것은 이 폭포 입장 하는 곳 에서 멀지 안은 곳에 새 공원이 있었다. 900마리 이상의 새가 있고 종류도 150 가지가 넘었다. 뱀도 있고 도마뱀도 있고 악어도 있었다. 나비들을 기르는 커다란 철망으로 된 나비전시관도 있었다. 부리 큰 새가 내 팔에 와서 앉기도 했다.

아르헨티나 쪽의 이과수 폭포 구경을 마치고 버스로 파라과이의 시우다드델에스테 라는 도시로 갔다. 이 도시는 브라질의 포스도이과수 라는 도시와 바로 연결되어있었다. 그 사이에 파라나 강 이 흐르고 그 강 위로 우정의 다리가 놓여있었다. 시우다드델에스테는 파라과이 에서 아순시온 다음으로 큰 도시다. 인구 35만이다. 이 도시에 간 목적은 이타이푸 댐과 국제시장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과수 폭포 시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르헨티나 국경을 지나갈 때 손님들로 하여금 출국수속을 밟게 했다. 브라질은 경유만 하기 때문에 입국 수속이 필요 없었다. 브라질에서 우정의 다리를 지나서 파라과이로 들어갈 때도 입국수속을 밟지 아니 하였고 버스는 정거조차 하지 않았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목적했던 여관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부근의 어떤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르쳤다. 호스텔은 다행히 근처에 있었다. 이 집에서는 밥은 안 주었지만 정수된 식수를 항상 냉장고에 넣어두고 공짜로 먹게 하였다.

가까운 곳에 재래시장이 있었고 그 안에 음식점도 많이 있었다. 음식 중에는 우리나라 순대처럼 닭 모가지를 비우고 그 속에 닭 내장을 다져서 양념에 버물러 넣고 찐 닭 모가지 순대가 있었다. 독주하고 같이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다.

여장을 풀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국제시장으로 걸어서 갔다. 가는 도중에 이상한 것을 보았다. 중국의 공자공원이 있는 것이었다. 어떤 연유로 중국에서 먼 이곳에 공자공원이 있단 말인 가.

파라과이는 바다가 없다. 세계의 대부분의 모든 나라들은 자국의 항구를 통해서 수출품을 내 보내는데 파라과이는 항구가 없다. 따라서 파라과이는 브라질과 국경이 닿아있는 시우다드델에스테를 수출창구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전자제품 의류 등 모든 제품을 무관세로 들여와서 역시 무관세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팔고 있었다. 이 두 나라 사람들이 여기 와서 물건을 차떼기로 사갔다.

국제시장에서 가장 큰 백화점은 이름이 차이나 백화점이었다. 백화점 안에 들어가 보니 없는 것이 없었다. 전자제품이 가장 많았다. 제복을 입은 예쁜 현지 아가씨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 하였다. 국제시장의 상권은 중국사람들이 쥐고 있었다.

이타이푸 발전소를 보러 갔다. 발전소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국경을 이루는 파라나 강을 막아서 만들었다. 댐의 크기 저수량 발전량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고 하였다. 1975년에 짓기 시작하여 10년 걸려 완공 하였다. 원자력 발전소 10개가 만들어 내는 것과 같은 양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생산되는 전기는 파라과이 총 전기수요의 78% 브라질 총 수요의 26%를 충당하고 있다고 했다. 이타이푸 라는 이름은 발전소를 짓기 전에 강 가운데 섬이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이 이타이푸였다. 지금은 물속에 잠겨서 없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발전소 직원들이 파업을 하고 있어서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옆에 있는 숲 속에 들어가 잤다.

취침이 끝난 후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나 부자는 있게 마련이다.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있었다. 들어 갈려고 하였으나 입구에 자물통이 채워져 있었다. 안을 들여다 보았더니 커다란 저택이 있었다. 경비원이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정을 말하고 경치가 아름다우니 좀 들어가 볼 수 없겠느냐고 청을 넣었다. 경비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문을 열어 주었다. 호수로 갔더니 이것은 호수가 아니라 큰 강이 내륙으로 쑥 들어와 있는 곳이었다.

여자아이가 조그만 배를 타고 노를 젓고 있었다. 손짓으로 내게로 오라고 했다. 설마 했는데 이 여자아이가 진짜로 내게로 왔다. 좀 타보자고 했더니 배를 강가로 댔다. 한참을 어린 소녀와 놀았다. 인간도처 유 청산이라.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

브라질 구세주 그리스도상 만나

2011년 72세의 나이로 1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한 달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와 파라과이를 혼자서 배낭여행 하였다. 이번 여행의 주 목적지는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 강 이었다.

비행기로 로스앤젤레에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공항에 도착 하였다. 브라질은 쏘련 캐나다 미국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다. 리우데자네이루는 인구 700만으로 브라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예약한 호스텔은 이파네마 해변에 있었다. 공항에서 직행버스가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걸어갔는데 쉽게 호스텔을 찾았다. 방에는 침대가 3층으로 되어 있었고 6개가 있었다. 18명이 잘 수 있는 방이다. 이런 방이 여러 개 있었다.

같은 방에서 에콰도르 에서 온 18세된 소년을 만났다. 데이빗 이라고 하였다. 내 침대는 일층이었고 소년의 것은 내 위의 삼층이었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어를 사용한다.

소년과 같이 버스를 타고 구세주 그리스도 상을 보러 갔다. 버스는 산 밑 까지만 가고 거기서 전용 미니버스를 타고 그리스도 상까지 올라갔다. 사람들이 많이 와 있었다. 나도 예수처럼 팔을 쩍 벌리고 사진을 찍었다. 소년이 사진을 찍어서 후일 이 메일로 보내 주었다.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경치가 아름다웠다. 세계삼대 미항 중의 하나로 손색이 없었다. 아래에 아름다운 로드리고 데 프레이타스호수가 보였다. 호수 주변에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걷기가 좋다.

호수를 걸었더니 조정학교가 나왔다. 카누처럼 생긴 배를 사람이 뒤를 보고 앉아서 노 두 개를 젓는다. 배를 육지에서도 탈 수가 있다. 연습용 조정을 시멘트 바닥에 고정시켜 놓고 뙤약볕 아래서 노 젓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이파네마 해변과 코파카바나 해변은 연결되어 있다. 산 옆에 있는 것이 이파네마 해변이고 더 위로 올라가면서 코파카바나 해변이 된다. 바닷가의 모래는 곱고 아름답다. 물이 빠지니 모래가 거울처럼 변해서 산 모습이 환히 비쳤다.

일요일 시내를 걸어보았다. 성당이 문을 열었다.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성당 안에 꽉 차 있었다. 과학 전시관 에서 비행기 조종석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을 태워 주고 있었다.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어서 아이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에콰도르 소년과 설탕 덩어리 라는 뜻의 슈거로프산에 갔다. 커다란 딸기처럼 생겼으며 리우데자네이루의 어디서라도 보인다. 걸어서도 정상에 올라 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다. 밤에 올라가면 아름다운 리우데자네이루의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과수 폭포와 아마존 강 구경을 마친 다음에 다시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올 예정이었으므로 3일밤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 직원은 컴퓨터에 예약사실을 입력할 터이니 염려 말라고 하였다. 나는 영수증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보관해 두었다.

버스를 타고 상 파울로 갔다. 430킬로미로 6시간 걸렸다. 상 파울로는 인구 1200만으로 브라질에서 제일 큰 도시다. 전철을 타고 예약해둔 호스텔을 찾아갔다. 전철이 발달되어 있어서 어디든지 갈 수가 있었다.

호스텔에서 하루 밤을 자고 아침에 전천을 타고 시내 중심가로 갔다.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큰 건물 나오고 그 안에 재래시장이 있었다. 없는 것이 없었는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과일 가게였다. 여러 가지 과일들을 한 개씩 한 개씩 쌓아 올려서 피라미드를 만들어 놓았다.

차이나 타운에 가 보았다. 큰길 옆에 조그만 광장이 있었다. 기념품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동양여자가 불고기를 구어서 팔고 있었는데 한국여자였다. 남편은 브라질 사람이었다.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중국의 길거리처럼 요란하게 꾸며 놓고 있었다.

호스텔에는 종류와 이름은 모르지만 하얀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털이 짧고 중간크기에 귀가 쫑긋 하였다. 나는 주로 개와 놀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디 있다가도 불이 낳게 달려왔다.

상 파울로 에서 밤 버스로 포스도이과수에 갔다. 1100 킬로미터이고 13시간 걸렸다. 종점이 아닌 길거리에 나를 내려놓고 갔다. 운전수에게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라는 도시로 갈 것이니 버스 타는 가까운 곳에 내려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었다.

새벽 세시여서 추었다. 배도 고팠다. 상점이나 집들은 다 문이 닫혀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어디로 가야 할 까. 어떻게 해야 할 까. 그저 떨고 서있을 수만은 없어서 무작정 발걸음을 옮겼다.

이과수 폭포는 두 장소에서 보아야 만 한다. 아르헨티나 에서도 보아야 하고 브라질 에서도 보아야 한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폭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과수 폭포를 아르헨티나 쪽에서 먼저 보기로 결정을 해 둔 터였다.

날이 밝았다.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물어서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시로 가는 버스정거장으로 갔다. 설명서에 보면 거리는 30 킬로미터 이고 한 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미니버스가 왔다. 어디서 탔는지 이미 사람들이 많이 타고 있었다. 요금을 지불했더니 무슨 전표를 하나 주었다. 버스가 아르헨티나 국경초소에 섰다. 내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입국수속을 마치고 서둘러 나왔다. 버스가 없다. 나를 두고 버스가 가버린 것이었다.

지나가는 승용차를 향해 손을 들었지만 아무도 태워주지 않았다. 두 시간쯤 지나서 버스가 한대 왔다. 손을 들었더니 섰다. 돈을 줄려고 하였더니 아까 받았던 전표를 달라고 하였다.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아르헨티나의 이과수 폭포 시에 온 것이다. 호스텔을 예약을 하지 않고 왔다. 그러나 어느 호스텔로 가야 할지는 설명서를 보고 미리 마음속에 정해 두었던 터였다.

호스텔을 정할 때 몇 가지 사항을 살핀다. 첫 번째는 가격 이다. 두 번째는 이 호스텔에 묵었던 사람들의 평가다. 다음에는 아침을 주는지 부엌이 있는지 위치가 편리한 곳에 있는지 하는 것을 따진다. 그러나100% 마음에 드는 호스텔은 찾기가 쉽지 아니하였다.

정류장에서 나와서 얼마 가지 아니해 호스텔 간판이 보였다. 들어갔다. 깨끗하고 정원도 있었다. 묵을 방을 가보았더니 시멘트 바닥에 단층 침대가 죽 놓여 있었다. 이만하면 되었고 또 피곤 했으므로 그냥 주저 앉았다. 이 호스텔에 3일 머 물었다.

다음날 아침 버스를 타고 이과수 폭포를 보러 갔다. 입장료를 아르헨티나 돈으로만 받았다. 아르헨티나 돈이 없다고 했더니 옆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가면 돈을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가게에 갔더니 돈을 그냥 환전해 줄 수는 없고 무엇이던지 기념품을 하나 사야만 거스름돈 형식으로 돈을 바꾸어 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울며 겨자 먹기로 조그만 동양 여자아이 인형을 몇 개 샀다.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를 이틀 동안이나 보았다. 입장료도 두 번이나 냈다.

아르헨티나 쪽 폭포는 주 폭포로 가기 전에 작은 폭포들이 여러 개 있었다. 이 폭포들도 주 폭포에 비해서 작다는 것뿐 이지 상당히 큰 편이었고 아름다웠다. 첫날은 이 작은 폭포들만 보고 돌아왔다. 특이 한 것은 이 폭포수 물속에 새들이 살고 있었다. 제비처럼 생긴 새들 이었는데 폭포 물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폭포수가 쏟아지는 뒤쪽의 빈 공간의 바위에 집을 짓고 살았다. 적들로 부 터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