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배낭을 메고 외국을 여행해본 것은 이집트가 처음이었다. 2005년이었고 내 나이 66세였다. 환갑을 훨씬 지난 나이에 외국을 혼자서 여행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질병에 걸릴 수도 있고 강도를 당할 수도 있고 교통사고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둘째 아들이 그 당시 대한항공에 일하고 있었다. 어디 외국에 여행 가고 싶은 데가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대한항공에 일한지가 오래되어서 가족 중 한 사람의 비행기 왕복표를 외국의 어느 나라던지 무료로 만들어 줄 수가 있다고 했다.
이집트를 택하였다. 7대 불가사의를 다 외우지는 못하지만 피라미드를 보고 싶었다. 이집트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어떻게 배낭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현지 호스텔에 가면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와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물어 보거나 같이 좀 다니자고 하면 되지 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였다.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가기 전에 카이로에 있는 한 호스텔에 3일밤을 예약을 하였다. 로스앤젤레스 에서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를 거쳐서 카이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이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환전소로 갔다. 한 중년남자가 군복을 입고 있었다. 미화 100달러 한 장을 건 냈다. 이집트 돈을 수도 없이 많이 주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에는 두꺼운 유리창이 있었고 밑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내가 받은 돈을 유리창 앞의 진열대에 좍 펴놓았다.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한 장 한 장 세었다. 큰돈 한 장이 모자랐다. 환전 원을 쳐다보았다. 그는 씩 웃더니 큰돈 한 장을 내밀었다. 그리고 ‘당신은 부자다.’ 라고 말했다.
대합실로 나왔다. 한 그룹의 한국 단체관광객들이 나왔다. 한국가이드 에게 카이로 시내까지만 버스에 같이 좀 타고 갈 수 없겠느냐고 물어 보았다. 가이드 말이 공항서 부 터는 현지가이드가 책임지기 때문에 자기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 대합실 안을 왔다 갔다 했다. 한 중년남자가 팻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유리창을 통해서 보였다. 팻말에는 카이로 시내 10불이라고 적혀있었다. 누구냐고 묻자 택시기사라고 하였다.
택시 승강장으로 갔더니 터번을 머리에 두르고 아랍 식 복장을 한 기사들도 많이 있었다. 택시에 오르려고 하자 경찰이 다가와서 여권을 보자고 하였다.
경찰은 자기 공책에 나의 모든 인적 사항을 적었다. 택시기사에게 운전면허를 달라고 하여 적었다. 택시의 번호판도 적었다.
오다가 기사가 말하였다. 경찰은 나의 안전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적은 것이라고. 어찌해서 그러느냐고 물었다. 택시기사가 가는 도중에 공범을 하나 더 태운 다음 사막으로 데리고 가서 짐을 뺐고 옷을 벗긴 다음 손님은 사막에 남겨두고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카이로는 공해가 심했다. 건물들과 회교사원들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도중에 경찰이 차를 세우고 검문검색을 하였다. 기사가 오른 편에 있는 커다란 건물을 가르치면서 대통령 궁 이리고 했다. 공해가 심하니 가난한 사람이나 대통령이나 다 같이 더러운 공기를 마실 수 밖에 없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가다가 기사가 왼쪽을 가르치면서 저기가 공동묘지인데 1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텔의 건너 편에는 맥도날드 햄버거 집이 있었다. 프론트에는 젊은 남자아이가 있었다. 숙박계를 쓰는데 이 아이가 뭐라고 하면서 나를 툭 치는 것이었다. 수속을 다 마치고 배낭을 들려고 하자 이 아이가 볼펜을 하나 주었다. 윗도리 주머니를 보았더니 있어야 할 볼펜이 없었다.
돔 방으로 안내되었다. 침대가 여덟 개 있었는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자전용 돔 방에는 여자가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여자는 중년여자였고 한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처녀는 페르시아 공주 같은 의상을 입고 있었다. 통이 넓은 분홍빛 비단바지에 자주색 저고리를 받쳐입고 있었다.
이 아가씨는 이스라엘에서 왔다고 했다.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랍국가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적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아가씨에게 같이 좀 다니자고 말해 볼까 하였으나 입이 떨어지지 아니 하였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라 이집트 박물관을 찾아갔다. 어떤 곳에 택시들이 많이 있었고 기사들도 있었다. 한 기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박물관에 가 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박물관은 아침9시 까지만 개인 입장객을 받고 그 다음 부 터는 단체 입장객만 받는다고 했다. 구경꾼이 너무 많아서 그렇게 한다고 했다.
그 사람 말을 믿지 아니하고 계속 걸었다. 길 건너 편에 커다란 주황색 건물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저것이 박물관 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거리에 경찰관 두 사람이 있어서 저것이 박물관 이냐고 물어 보았다. 이 들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손을 홰홰 저었다.
양복을 입은 신사가 지나가서 물어 보았더니 그렇다고 하였다. 차들은 무섭게 길 양쪽으로 전 속력으로 달렸다. 사람들은 차들 사이사이를 곡예사처럼 길을 건너갔다.
나도 한번 건너볼까 하고 시도해 보다가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이 때 한 현지청년이 지나 가면서 저 앞의 그림가게로 들어가면 지하도가 있어서 건너갈 수가 있다고 했다. 반신반의 하면서 가게로 들어갔더니 지하도 같은 것은 보이지 아니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얼른 돌아서 나와 버렸다.
아까 그 청년이 되돌아 왔다. 길을 건너가 보아야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아침 9시까지만 개인 입장객을 받는다고 하면서 택시기사와 똑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는 밤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집이 마침 피라미드 부근에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택시는 요금이 비싸니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나는 망설였지만 그 청년이 거짓말 할 사람 같이 보이지 아니하여서 그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그의 이름은 ‘알리’ 라고 했다.
버스요금은 두 사람 것을 합해보아야 1000원도 안되었다. 얼마 가지 아니하여 길거리에 내렸다. 차는 손님이 원하는 어느 곳에서나 세워 주었다. 알리는 나의 손을 잡고 길을 건넜다. 골목으로 들어갔다. 검은 옷을 입은 아낙네들이 먼지가 이는 골목길에서 아이들과 같이 놀고 있었다.
알리는 계속 말을 하면서 나를 안심 시켰다. 나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 오늘 나를 안내해주면 사례금을 주겠다’고 말했다. 알리는 ‘돈이 뭐 그리 중요하냐’ 하면서 나를 안심 시켰다. 나는 참 친절한 이집트 청년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알리는 나에게 병물 도 사주었다.
조금 더 가니 낙타들이 앉아 있었다. 알리가 “피라미드에 갈려면 낙타를 타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낙타주인을 잘 아니까 싸게 해줄 테니 낙타를 타고 피라미드에 가자.” 고 하였다. 낙타 사무실로 들어갔다. 주인은 흰 아랍 식 옷을 입고 터번을 쓰고 있었다. 실제가격은 얼마인데 많이 깍 아 주겠다고 말했다.
낙타주인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참 용감한 사람이다. 카이로에서 관광객이 많이 죽는다고 신문에 났을 텐데 어떻게 혼자서 여기까지 왔느냐?” 고 하는 것이었다.
구경꾼은 나 혼자인데 네 개의 생명체가 나를 호위하였다. 알리 와 몰이꾼 한 사람 말 한 필과 낙타 한 마리였다. 낙타 등에 올라타자 낙타가 일어섰다. 동작이 어찌나 큰지 낙타에서 떨어질 번 했다. 몰이꾼이 나를 부축하였다.
나는 낙타를 타고 갔고 알리 와 몰이꾼은 걸어서 갔다. 낙타의 걸음은 느리고 폭이 컸다. 내 몸이 앞뒤로 크게 흔들렸다. 얼마 가지 안아서 배가 아파서 더 이상 낙타를 타고 갈수가 없었다. 몰이꾼이 낙타를 세웠다 그리고 나를 말로 옮겨 태웠다. 영화를 보면 사람들이 말이나 낙타를 타고 신이 나게 달린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의심하지 안을 수 없었다.
인가 끊어지고 모래사장이 나왔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 이었다. 햇볕은 사정없이 내려 쪼였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모래가 나의 얼굴을 때렸다.
나는 모자라도 쓰고 있었지만 알리 와 몰이꾼은 모자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햇볕이나 바람을 무서워하지 안았다. 이들은 그 이글거리는 태양에 자기들 몸을 내 맡기고 있었다. 몰이꾼이 말을 빨리 몰아서 나를 즐겁고 무섭게 만들었다. 거대한 피라미드 가 장관을 들어내고 있었다.
낙타사무실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알리는 낙타 사무실 옆에 있는 향수가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나 꽃에서 채취한 향수가 제일 좋다고 하였다. 나는 늙었기 때문에 향수를 줄 사람이 없다고 극구 사양했다. 그래도 주인은 끈질기게 향수를 사라고 권하였다.
알리는 나일강으로 가서 놀자고 하였다. 그 다음에 기차정거장으로 가서 왕들의 계곡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자고 했다. 기차표는 밤에만 판다고 하면서 지금 가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저녁에는 자기 집으로 가서 자기 아버지도 만나보고 자기 식구들도 만나보자고 했다. 이집트인 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였기 때문에 나는 알리 의 말을 고맙게 생각하였다.
택시를 탔다. 알리 가 말했다. 여동생이 다음주 결혼하는데 잔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양주와 양담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양주와 양담배를 좋아한다고 했다. 면세점에 들려서 양주와 양담배를 사달라고 했다. 돈은 자기가 내겠다고 했다. 출국할 때 지장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알리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가는 도중에 알리는 한 젊은 동양청년의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사진에 한글로 한국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알리는 이 청년도 자기가 구경 시켜 주었는데 양주와 양담배를 사 주었고 자기집에도 갔었다고 하였다
면세점 안으로 들어갔다. 알리는 주인과 싸우는 것처럼 이야기 했다. 양주와 양담배를 사주어도 출국 시 지장이 없겠느냐고 주인에게 물었다. 괜찮다고 하였다. 주인은 양주 두 병과 양담배 두 보루를 꺼냈다. 서류를 작성 하더니 나더러 싸인 하라고 하였다. 여권에 물품도장을 쾅쾅 찍었다.
알리는 양주와 양담배를 가게 밖으로 가지고 나왔다. 밖에는 뚱뚱한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알리는 양주와 양담배를 이 사람에게 주었다. 무엇인가 받아서 자기 주머니 속에 넣었다. 우리는 다른 택시에 올랐다. 나일강으로 간다고 하였다.
왜 술과 담배를 안 가지고 가느냐 고 알리 에게 물어보았다. 알리는 지금 돈이 없어서 물건을 맡겨 두었다가 후에 집에 가서 돈을 가지고 와서 찾아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일강에 도착하였다. 알리는 면세점까지의 택시비와 여기까지 온 택시요금을 달라고 하였다. 달라는 대로 주고 나는 더 이상의 현찰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신용카드 밖에는 가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돈이 있는 줄을 알면 다 쓰게 하거나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강변은 시멘트 벽으로 처리가 되어있었다. 강물은 저만치 밑에서 흐르고 있었다.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배가 한 척 있었고 두 사람이 타고 있었다. 알리는 음식을 시키고 술도 시켰다. 한 사람이 배에서 내려서 뛰어갔다. 조 금후에 맥주 네 병과 생선 튀김이 왔다.
배는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강물은 넓고 유속이 느렸다. 커다란 호수를 항해 하는 것 같았다. 붉은 연꽃이 군데군데 피어있었다. 강 가운데 커다란 섬이 있었다. 이 섬에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부자들이 사는 게지 섬이라고 하였다.
술과 음식을 먹었다. 사공은 음악을 틀었다. 알리 와 나는 노래 부르고 춤 추었다. 사공은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을 먹었다. 사공이 돈을 달라고 하면 나는 면 모르는 일이라고 고 말하라고 하였다. 자기에게 이야기 하라고 말하라고 하였다. 나는 돈을 알리가 내겠다는 뜻인가 하고 잘못 생각하였다.
강변에 닫자 알리가 나더러 미화 300달러를 달라고 하였다. 나는 아까 너에게 돈이 없다고 말하지 안았느냐고 했다. 알리는 나를 은행으로 데리고 갔다. 은행은 이미 문이 닫힌 후였다. 알리는 나를 금전 자동 출납 기로 데리고 갔다. 돈을 뽑으라고 했다.
금전 출납 기의 화면의 글자가 너무 작았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두 개의 글자가 동시에 찍혔다.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때 순찰 돌던 경관 두 명이 와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순경에게 말해 보았자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알리 에게 호스텔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내일 은행에 가서 돈을 찾아서 주겠다고 말했다. 알리는 밤에 여는 은행이 있으니 가보자고 했다. 그 은행도 문이 닫혀있었다. 알리는 한 그림가게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림가게 주인은 돈이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밤은 깊었다. 지친 나는 바지안쪽 비밀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주어버릴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 뒤가 문제였다. 알리 와 사공이 내 몸에 거액의 돈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냥 보내 줄 지가 의심스러웠다.
알리가 택시를 잡았다. 사공도 택시에 탔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끌려 다니는 것이 나은지 반항해 보거나 탈출을 시도해 보는 것이 옳은지 생각에 생각을 해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알리 가 나를 이렇게 끌고 다니는 것은 내 몸에 현찰이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을 무엇 때문에 해치려고 하겠는가 라고..
한참을 가다가 어디선가 섰다. 낯익은 곳이었다. 아침에 낙타를 탔던 곳이었다. 밤이 되어서 태양도 지고 서늘해 졌다. 터번을 쓰고 수염을 길게 기르고 아랍 식 복장을 한 노인들이 죽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를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자기들끼리 뭐라고 말하면서 한바탕 웃었다.
알리는 향수가게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낙타 주인에게 내 신용카드로 300불을 뽑아달라고 했다. 60불의 커미션을 주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돈을 받고 나서 손가락으로 알리를 가르치면서 ‘아는 사람이냐?’ 하고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이 대답했다. “알리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이다.”
알리 에게 이제 셈이 다 끝났으니 호스텔로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알리가 택시를 잡았다. 사공은 돈을 다 받았는데도 또 같이 택시를 탔다. 세 사람이 탄 택시는 달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이집트에 고속도로가 있는 줄 미쳐 몰랐다.
택시는 고속도로를 미친 듯이 달렸다. 호스텔로 가는 줄 알았는데 택시가 한 시간 이상을 달렸다. 알리 에게 어디로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알리는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다. 나는 나의 운명을 남에게 맡겨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어버렸다.
한참을 더 가다가 차가 고속도로에서 내렸다. 맨 흙의 넓은 광장이 있었다. 수 천명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백열등을 수백 개켜놓고 수레에 물건들을 가뜩 싣고 팔고 있었다. 사람들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였다. 먼지가 뽀얗게 일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야시장이었다.
알리는 또 돈을 달라고 하였다. 아까 받은 돈 중에서 저를 주고도 우수리 돈이 나에게 남아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주머니의 돈을 털어서 다 주었다. 알리 가 택시를 잡았다. 운전수에게 얼마인지 모를 돈을 주었다. 나더러 택시를 타라고 하였다. 나는 알리 에게 같이 가자고 하였다. 알리는 자기는 자기집에 다 왔으니 더 이상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나의 볼에다 대고 뽀뽀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친구여 고맙다. 잘 가시오.”라고.
방에는 오늘밤에도 아무도 없었다. 쓰러져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써 여덟 시였다. 프론트로 갔다. 허둥대는 것을 본 어제의 그 청년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아홉 시 가 지나면 박물관에 못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그러 드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박물관에는 돈만 내면 아무 때나 들어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박물관은 인산인해였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피라미드 속에는 죽은 왕이 저승에서 살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물건을 만들어 넣어두었다. 이 물건들을 꺼내서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커다란 배도 있었고 여자들이 아이 낳을 적에 사용하는 의자도 있었다. 이집트 여자들은 엉거주춤 서서 애기를 낳았다.
동물의 미이라도 수없이 많이 있었다. 엑스레이를 찍어보았더니 어떤 것은 가짜 미이라 임이 판명되었다. 모양만 동물이지 나무 가지 등 거짓물건을 속에 넣고 미이라를 만든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기꾼은 있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것도 감히 정부를 상대로 해서.
왕들의 미이라도 있었다. 투탕카멘 의 금으로 만든 가면은 인상적이었다. 왕의 미이라의 가슴에는 금으로 만든 풍뎅이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풍뎅이는 소 똥을 동그랗게 뭉친 다음 그 안에 알을 하나 낳고 죽는다. 알은 소 똥을 먹고 자란 다음 성충이 되어 밖으로 나온다. 죽은 풍뎅이 옆에 새로운 풍뎅이가 있으니 이집트 사람들은 풍뎅이가 부활 한 것으로 믿었다. 왕이여 부활 하소서.
나는 이집트에 정이 떨어 졌고 무서워 졌다. 호스텔 청년에게 부탁하여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예약하였다. 청년은 택시비를 먼저 달라고 하였다. 조금 후에 택시가 왔다. 청년이 택시기사에게 직접 돈을 주었다. 그라고 기사에게 공항까지 나를 태워다 줄 것을 부탁하였다.
공항에 도착해보니 한국남자가 한 사람 있었다. 내가 겪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분은 중국사람이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답답한 심정을 한국여자 승무원에게 털어 놓을 수가 있었다. 한 달로 예정하고 떠났던 나의 최초의 해외 배낭여행은 이틀 만에 끝나고 말았다. 씁쓸한 마음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왔다.
서효원 선생님은 은퇴를 하고 세계여행을 백팩 하나만 메고 하신 분입니다. 본문은 전혀 손보지 않았습니다. 이해 바랍니다.<편집자주>